철수네 소프트웨어 세상 [본점]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면 뭐든지 – I no longer work for Microsoft.

철수네 텀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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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들을 텀블러에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몇주 생각하고 수정해서 (시덥잖은 글 하나 적는데 몇주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약간 정리된 글을 적기보다는, 뭔가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바로 덤프하는 용도로 시작해봤는데 나쁘지 않네요. 텀블러에 만들어둔지는 꽤 되었지만, 이제야 실험해봅니다. 개인적인 스크랩은 인스타페이퍼를 사용하지만, Read Later 버튼과 검색의 편의를 활용할 뿐 거의 정리를 안하고 코멘트를 다는 일이 없기도 하는 부분이 맘에 걸렸거든요. 텀블러에 포스팅하는 인터페이스가 영 시원찮아서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긴하지만, 아마도 사용 방법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니 일단은 공부해볼랍니다.^^

 

Written by charlz

2014년 4월 21일 at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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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교육의 논의의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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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게 맞을까“를 적은 이후에 봐도 여전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게 재탕좀 해도 되겠다 싶었다,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반복은 중요하니 생각을 더 적어본다.

어릴때부터 코딩을 접하는게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글들에서 단골로 나오는 주인공들, 빌게이츠, 마크저커버그, …… 피식 웃음이 나올때가 있다. Code.org의 캠페인 동영상이라면 말이 된다. 캠페인이니까. 동영상을 보면, 중간에 생뚱맞게 모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뭐지? 코딩을 하면 이렇게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는건가? 암튼 캠페인 동영상이니까. 뭐. 하지만 당연히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답이 되지 않는다. 좀 다르게 가보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 사무실에 뛰쳐들어 가서 아무나 붙잡고 코딩에 대해 물어본다면, 코딩 구리구요 안좋아요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그 전체 중에서 몇명일까? 과감히 내맘대로 예상컨데, 많지 않을 것이라.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코딩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냐고 묻는것 자체가 사실 웃긴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글을 보면 피식 하지 않을수가.

“정기자님. 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아, 네 정기자입니다, 저는 모 소프트웨어 회사에 CEO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유명한) CEO님, 어릴 적에 코딩을 공부해서 소프트웨어 업계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데, 어릴 적부터 코딩을 배우는 것에 대한 견해가 어떠신지요?”
“아 네, 저는 어릴 적부터 코딩을 배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는 뛰어놀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어릴 적에 배우지 않아도 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안좋다 답한 내용과는 별개로 여기서 오류는? 정작 코딩을 어릴적부터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이런 인터뷰를 반영하는것이 아니라 연구 데이타로 쓴다거나 그냥 즐겁게 참고하면 된다.

요즘 업계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일론머스크. 위키피디아를 보면 12살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고 나와있다. 여기서 예를 들어, 우리가 위의 여러 예시들에서 암묵적으로 가정한 “성공”의 여건은 프로그래밍이었을까 아니면 독학이었을까.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조기 코딩 교육이 좋은가하는 질문에는 사실 여부를 떠나 도움이 되지 않는 일화다. 좋다는 찬성 의견을 팔때 사용하는 일화일지언정. 더 반대쪽으로 가서, 어릴적부터 코딩을 배우지 않은 석학과 성인과 유명인과 부자들을 찾아볼까? 이들이 어릴적 코딩을 배웠다면 더 나은 결과가 되었을까? 김정은이 어릴적 코딩을 배웠다면(배웠을지도?) 나라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었을까(나 종북 아님)? 안다,억지스런 질문인거. 요컨데, 요점은 이 질문들은 다 답을 낼 수 없는 엉뚱한 방향이라는 사실이다.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던진 화두가 아니다. 전에도 적었듯이 개인적으로는 중립적이다. 단순하게 왜 코딩 – 이 뭔지부터 – 을 일찍 배우면 좋은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저커버그가 페북 CEO가 되었기 때문에 코딩을 배우자는 분위기를 흘리는 이야기는 웃기다는 것이다. 무슨 코딩이 논리의 만능 도구라도 되는 마냥 이야기하거나(코딩을 잘하는데 논리는 코드에서만 볼 수 있는 분들 많지 않던가? 논리라면 필요 조건과 충분 조건부터 구별해보자.),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최상의 교육 아이템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뭔지. “내가 어릴 적부터 배웠는데, 지금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각자의 경험적인 흑백 근거?

<인용>”SW를 문제 해결 방식 가운데 하나로 들여 오자는 겁니다. 먼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수업(이 가능한 여건)을 갖추고 SW를 그 수단으로 삼자는 거지, SW 자체를 익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녜요.“</인용> 이런 이야기라면 모를까. 한문장으로 <인용>”코딩 수업의 목표는 제2의 저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돼서는 안 된다. 건실한 교육과정과 흥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인용>라는 이야기.

코딩을 배우는게 구체적으로 뭘 배우라는건지(언어? CS커리큘럼? 툴활용? 이론?) 얼마나 걸려서 어떻게 배우라는건지 왜 언제부터 배우라는건지 이런질문도 없이 그냥 코딩을 일찍 배우는게 좋다는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코딩을 일찍 배우는게 좋다. 나도 했다.

나는 코딩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얻는 문제 해결 능력과의 연결고리를 단순히 코딩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배울 수 없다는 견해다. 그 연결고리로 가이드를 하고 교육해야지 코딩만을 가르친다고 연결고리를 알아서 깨닫게 수준으로는 입시에 넣어봐야 암기과목 하나 더 늘이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매개 자체가 문제 해결 능력을 준다니, 코딩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깨달은 능력이 된 일부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 아닌가. 재능이 있는 사람을 위한 교육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코딩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풀 수 있는 요소일 수 있지않을까? 코딩을 교과목에 넣어야된다는 논의보다 커리큘럼이나 프레임웍을 어떻게 짜야할 것인가가 더 어려운 것이지 않을까. 혹여, 잘못된 도입으로 인해 컴퓨터가 없으면 문제를 못푸는 부작용(확장이 아니라 대체)이 생길지는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전에도 공유한) 이 동영상 거의 마지막에 Wes Dyer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용>”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은 오퍼레이셔널(operational; 번역할 단어가 딱히 없어서 영영사전의 뜻을 적는다: pertaining to a process or series of actions for achieving a result)하게 생각한다. 다음 단계로 뭘 해야하는가, State Machine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등.”</인용> 공감한다. 현재의 프로그래머들은 다수가 튜링의 시대에서 튜링의 이론하에 코딩을 하는데,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튜링의 시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어떤 한계였을지도 모를일이다. 예를 들어, Actor Model을 만든 Carl Hewitt은 동시성(Concurrency) 더 나아가 컴퓨팅을 튜링의 이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생각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방식의 코딩을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되려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산업에 맞게 획일화하는 것은 아닐까. Carl Hewitt같은 생각을 낸 것은 코딩을 나중에 배웠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나. 예를 들면, 이미 사고 방식이 선 이후에 배운 코딩으로 말이다.

어떤 언어를 배워야하나를 정한다면? 베이직같이 그냥 쉬운 걸로? 혹은 헷갈리는 JavaScript로? 함수형 언어도 요즘 새롭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Douglas Crockford는 다음 ECMAScript 표준에 수학에 배경을 둔 (그리고 물리에서 영향을 받고, 함수형 언어에서 사용되던) Monad 구현을 위한 내용들이 들어간다고 한다. 절차형이나 객체형 언어를 배우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것이라는 생각에 또 금이 간다. 대학 1학년, 갑자기 카/크들거리면서 Lisp를 배워야했던 기억도 생각난다.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가르치는 교과서적인 SICP도 Scheme을 사용한다. 게다가 컴퓨터 이론의 증명은 수학을 사용한다(컴싸 석학들이 수학/물리학 배경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릴적 컴퓨터 학원에 다닐 수 있었는데, 그때 처음 배운 것은 Lotus 1-2-3였다.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스퀵도 있다. 예시가 너무 멀리까지 간 것 같지만, 단순히 어느 언어냐보다는 우리는 무엇을 코딩으로 가르치려는가를 명확히 짚고 가야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Lisp을 배우지 말란법이 없고, 수학적 알고리즘 분석을 하지 말란법 없다. 배우고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지 유행하는 언어나 꼭 현업에서 실용적인 언어를 쓸 필요도 없다. 왜 그래야하는가가 명확하다면. (단순히 사업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언어를 새로 만들겠다는 쓰잘데기없는 논의는 하지 말자.)

프로그래밍을 요하는 직업이 엄청나게 늘어난다고해서 모두가 프로그래밍을 해야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집수리를 하기 위해서 배워야되는 것은 집수리를 할 때 배워도 되지만, 먼 미래에 집을 가지게 되면 집을 수리할지도 모르니 그때 쓰라고 집수리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치라 식인 것도 마찬가지다. 집수리가 아니라 도구, 재료, 원리 이런 것을 가르쳐서 뭐든 수리를 할때 도움이 되는 것과 미래에 무슨 수리를 할 지 모르는데 집수리를 가르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선택이 아닌 정규교육이 선택을 하는 직업교육으로 바뀐다는건 슬플 것 같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의 미래가 그렇게 투명하다는데에 부정적인데,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면 역시나 공감하기 쉽지 않다. 교과 과정으로 코딩을 가르치자는 취지가 프로그래머 대군 양성이라면 혹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라면 혹은 단순히 특정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바른 방향이 아닐 것이다. 하드웨어가 다시 유행하면 다시 땜질을 가르치고 바이오테크가 유행하면 실험장비에 집착할 것인가. 하지만, 언젠가는 어떻게든 컴퓨팅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될 것이 교육이니 모/도로 이렇게 한다 안한다만을 이야기하지 말고, “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고쳐나가는 것이 미래 지향적일 것이다. 이미 지구상의 교육 혁명은 일어나고 있는데 말이지.

이상,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손가락)에서 나왔기에 믿을 수 없는 글이었다.

Written by charlz

2014년 2월 2일 at 오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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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호흡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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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책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그것이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를 이미 몸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책을 읽는 것보다는 영화를 보고 웹서핑을 하고 게임을 하는 시간으로 보내니 말이다. 미디어 매체가 진화하고 있으니 사람들도 이에 맞춰서 바뀌고 있는 것이고 당연하다.

사람들은 책이라는 호흡에 익숙해져있다. 공부를 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하나의 주제를 섭취하는 호흡 말이다. 5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것처럼, “책한권”이라는 단위에 익숙하다. 언제까지 이 책을 읽을 것이다라는 어떤 commitment(공약)의 단위이기도 하다. 적어도 정규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소한 12년 이상을 이 호흡에 맞춰서 몸에 익힌다. 두꺼운 책은 두권으로 나눠서 한편 이상으로 나누기도하고, 어떤 주제들은 책을 여러권 엮은 한 질로 구성된다. 아마도 들고 다닐 수 있는 분량이나 두꺼워도 최소한 넘겨서 볼 수 있는 만큼으로 제한을 한 그런 물리적인 한계에서 온 단위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미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이런 물리적인 제약의 필요성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이퍼 미디어는 단위를 굳이 책 분량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 사람을 책에 맞추기 보다 글을 사람에 맞추는 것이 가능한 세상으로의 진화 요소는 갖춰진 것이다. 게다가 글이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발전하고 있다.

지금의 책에 익숙한 세대라면 새로운 방식보다는 익숙한 책의 단위가 더 편할 것이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의 세대에게는 새로운 미디어에 훨씬 익숙해져 있음에도 그것에 맞춘 방식이 아니라 구세대(?)적인 방식에 꿰맞춰서 교육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맞춰 효율적인 방법으로 시스템이 변화해야되고, 적절한 단위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고, 또한 이를 위해서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인데, 점차 책을 읽지 않는 현상 자체는 분명 탓할 대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책의 호흡을 기준으로 헤쳐 모여있다. 때문에 이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에는 저항이 뒤따르고, 변화는 더딜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교과서는 안가져오면 선생님한테 혼나기에 물리적인 책을 “구매”해야되는 사업 대상인 것이다. 책을 예로 들었지만, 잡지나 신문의 예도 마찬가지다.

상업적인 영역에서는 변화가 생각보다 빠르다. 기존 책을 단순히 그대로 전자 매체로 바꾸는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그 이북의 성장도 괄목할만 하다. 변화의 첫 단초이겠다.

책보다 작은 단위의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십여년전부터 블로그라는 플랫폼을 통해 개인의 생각을 적는 단위를 만들었다 – 생각보다 블로그를 엮어서 책을 만드는 사례가 적은 것도 책이라는 호흡과는 다름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Medium, Svbtle 같이 이를 더 강화해보려는 실험도 있고, 모바일 영역에서 카카오페이지와 같이 책과는 다른 단위의 마켓을 실험하기도 했고, 교재들의 멀티미디어화 실험들, 글들의 다양한 매거진화 실험들, Kindle Singles와 같은 짧은 이야기를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실험등등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실험되고 있다. (아직 딱히 굳어진게 없어서 모두 실험으로 생각한다.)

MOOC도 굉장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교재를 필요로하지 않는 강의들도 굉장히 많아졌고, 미디어의 길이도 한시간이 아니라 짧게 토막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MOOC이 아니라도 TED처럼 일부러 요점에 다가갈 수 있게 짧은 시간을 강제하는 형태가 되려 지식을 얻는 호흡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짧은 팟캐스트나 혹은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책의 호흡을 바꾸는 한 형태이겠다 – 책 한권을 읽어주는 시간은 꽤나 길다. 만화도 인터넷의 호흡으로 바꾸는 다양한 노력들이 생겨나고 있다. 만화책의 포맷으로 제공하던 것을 반대로 웹툰이라는 스크롤 형식으로 바꿔 제공하는 것도, 만화책이 아니라 연재 단위를 판매하는 것도, 모두 이런 호흡의 변화의 조류와 맞물리는 것일게다.

작년 노벨 문학상의 Alice Munro도 숏스토리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우연일까.

가장 중요한 섹터인 교육도 바뀌어야한다. 단순히 숙제를 온라인으로 올린다거나 교과서를 다운 받을 수 있다거나 인강을 한다거나 그런 도구와 매체 자체의 활용도 이뤄져야하고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지만, 길게보고 시작해야되는 훨씬 근본적인 호흡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논의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는걸까.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으니 이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만보고, 미디어 자체에 대한 그 손가락 논의를 빨리 벗어나서 달을 보는 진화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작 중요한 교육 자체의 변화를 대비하는 논의는 아직 들어본 바 없다(그렇다고 그런 논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매체만 바꾼다고 책을 보는 시간이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시간으로 대체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겠다. 책으로 보던 것을 디바이스로 보는 것으로 바꾸는 것과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테니 말이다. 이런 매체 자체에 대한 부분들은 반영이 더딜 필요가 없지 않나 싶지만, 반면에 교육 자체를 바뀐 포맷을 활용하도록 진화시키는(예컨데 시험을 보는 방식이라든가, 교과 과정을 책이 아닌 새 매체의 호흡에 맞게 적용한다든가) 논의는 어설프게 급조한 스마트 교육이라는 이상한 형태가 아닌 충분한 베이킹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모 대통령이 던진 사회성/인성같은 이야기는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된다는 커리큘럼에 대한 논의 이전에 사이버에틱스(cyberethics)과 같은 것을 배우는 것과 같은 논의로 풀어야될 역시나 다른 이야기지 않을까.

뭐, 신문이 없어질리가 없다는 이야기와는 다르지 않게, 책도 없어질리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없어지냐 없어지지 않느냐는 지식 소비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바뀌고 있느냐가 직접적으로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하느냐와 연결되어있기에 더 중요하지. 앞으로는 구세대적인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책의 호흡 단위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그 변화를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사는데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charlz

2014년 2월 1일 at 오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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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간 낭비 불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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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초 한해가 시작하면서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이 되는 것 같은 생각 중에서 뭔가 책을 쓴다면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꺼리를 적어볼 시간이 있었다. 일단 “인생 시간 낭비 불가법”이라는 유치한 제목으로 시작했고 별로 적절한 제목같지도 않지만, 내용은 한해 생각해보고 가지를 치기에 꽤 괜찮은 것 같아서 공유해본다(워드 문서로 적었는데 날짜를 보니 1월 6일자).

  • 한번 사는 인생임을 항상 명심해라.
    • 종교적으로 다음 생이 있다고 해도 지금 생은 한번이다.
    • 내가 죽을 확률은 X다. 로또보다 휠씬 높다.
  • 습관을 정복하라
    • 습관은 강박과 연결하면 실패확률이 높다.
    •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 1초후의 미래를 생각하라.
    • 1초에 나는 다른 사람이다. 1초, 1분, 1시간후에는 더 나은 나일 수 있다. 꼭 그래야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기왕이면 더 나은 나라면 내 다음 단계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가까울 수 있다.
    • 더 나은 나이기 위한 실험이 계속된다. 뭔가 바뀐다고 더 나은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생기는 것이다.
  • 24시간을 초/분 단위로 씹어먹어라.
    • 인생은 길다. 단지 필요한 부분만 기억하기 때문에 짧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적는 습관이 있으면 적어도 되고, 아니더라도 씹어 먹으면 된다.
  • 우선순위를 제대로 매겨라.
    • 예를 들어, 3년동안 미뤄왔다면 우선순위가 아니다. 우선순위였지만, 못했다는 말은 인생을 그보다 낮은 우선순위의 일로 보냈다는 뜻이다.
    • 마음의 우선순위와 실제 우선순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라.
  • 남과 비교하지 말라.
    • 담배를 끊으면 페라리를 샀겠다는 여친이 페라리가 없는 것은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과 비교하는 어불성설이다.
  • 건강을 위한 모든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다.
  • 대부분의 경우를 다 생각했다 싶으면 더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결정을 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말고 다음을 생각하라.

내년 초에 다시 좀 더 한해동안 생각해본 것들을 추가하고 보완해볼 생각이다.

특히나 “24시간을 씹어먹어라”는 수년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실패한 항목이기도 한데, 올해는 다니엘카네만의 Think Fast and Slow를 통해서 뭔가 좀 더 생각해본 점이 있었다. (게다가 1초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우연히 관련이 있다.) 인생을 짧게 생각하는 문제는 어떤 성과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무튼 그런 부분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 작년 초(정확히는 제작년말)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적었다.

덧붙여 건강과 여유(혹은 Procrastination) 그리고 공유(같이 살기) 같은 부분도 더 붙이고 싶다.

사는데 원칙이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원칙도 개선될 필요가 있기에 몇몇 항목을 나열하는 것인만큼 부담도 안되고 재미난 개인 프로젝트지싶다.

 

Written by charlz

2013년 11월 18일 at 오전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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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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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이들도 프로그래밍(코딩)을 배워야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왜?

프로그래밍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냥 막연한(인터넷에서 본 글들의) 예를 들어서… 논리적인 사고, 그런건 다른 책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나? 레고를 혹은 과학상자를 혹은 비디오게임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논리적인 과학자라고 프로그래밍으로 논리를 배운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프로그래밍을 잘한다고 할 수 없듯이 프로그래밍을 논리적인 사고를 위해 배워야 된다고 하는 것은 뭔가 그냥 유행같다. 프로그래밍을 잘하게 될 지언정. 그냥 머리에 떠오른 예시일 뿐이니 프로그래머들이 더 논리적일까에 대한 논쟁은 버려두자, 난 그리 생각하지 않으니.

많은 프로그래밍하는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 사람들의 (그들이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문맥에서는 믿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그 좋다는 것이 일반화되기에는 뭔가 오류가 있지 않을까. “내가 해봤는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다.^^ 그 사람들이 인정받기 때문에 믿는 권위에의 오류일까, 아니면, 정말 프로그래밍을 해서 인정받게 된 증명되지 않은 사실(fact)일까. 혹은 통계적으로 잘된 경우가 더 눈에 띄는 심리적인 현상일까. 어떤 능력이 더 좋은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잘하더라, 그렇다면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그 능력이 좋아지는 것인가. 우리는 프로그래밍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간의 차이를 실험해서 일반화할 수 있을만한 의지가 있는 것일까. “왜” 배워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리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프로그래밍을 무작정 교육에 집어 넣기 위한 근거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반대로, 프로그래밍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이 할머니/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줘야되는 것이 맞는 방향이 아닐까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누구나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프로그래밍을 배움으로써 가지거나 가지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중요한 것이고, 그 효율적인(?) 보조매개로 프로그래밍이 각광받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프로그래밍이 되려 누구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 지금쯤이면 속된 말로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어야하지 않았을까? 꼭 프로그래밍을 배워야된다는 것보다 도구가 프로그래밍을 쉽게 도움(Facilitate)을 주고,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될 그런 경험을 선사해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세상과는 꽤나 멀다. (IT)세상은 돈이 지배적이고, 그 돈이 지배적인 세상에서는 Innovators Dilemma 때문에 생각보다 발전은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이다. 사실 IT 산업이 우리 할머니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보이기에는 그다지 없다. IT 산업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IT 산업에 종사해야하는건 아니다. 왜 모두가 스티브잡스이고 마크저커버그이고 빌게이츠이어야하는가. 웃긴 일이지만, 안웃기게도 자본이 모이는 곳에 아이들의 미래를 보내고 싶어하는 심리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기사도 좀 안타깝다.)

우리는 예를 들어 마당의 워터쿨러 시스템 같은 홈 오토메이션에서 은연중에 생활속 프로그래밍을 한다. “시간이 몇시가 되면 물을 틀어 몇분후에 끄고, 수요일은 예외로 하고, 온도가 몇도 이상이면 틀지 말아라.” 프로그래밍 로직이다. 이렇게 말로 하면 쉬운데, 프로그래밍 언어로 적으라고 하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 되어버리는지. 이 둘간의 패러다임 쉬프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 여전히 다수가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머의 몫으로 생각한다. 앨런 케이의 끊임없는 노력이나, IFTTT와 같이 프로그래밍이 아닌 프로그래밍 같은 것등 노력은 꽤 많다. 삶속에서의 프로그래밍 메타포를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둘의 융합은 아직인 것 같다. 되려 우리의 사고가 프로그래밍 언어의 틀에 구애받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하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 적어도 지금 주류의 패러다임에 있어서는 말이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프로그래밍을 프로그래밍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다른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우리 할머니가 C코드를 작성하실리는 절대 없지만서도, 우리 아이들도 C코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것이다. 왜 아이들에게 포인터의 개념을 가르치고 있어야되나,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할 필요는 없는 내용같은데.

비주얼 프로그래밍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자칫 잘못 오해하면, 뭔가 휙휙 끌어다 놓고 연결하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 맞춰서 충분히 추상화된 경우가 아니라면 도메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전문가에게는 쉬울지언정, 일반인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게미피케이션으로 논리/로직을 가르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된다는 이야기는 사실은 프로그래밍의 어떤 요소를 가르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프로그래밍이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아니라면 꼭 프로그래밍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역시나 택타일한 레고나 과학상자가 더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란 법은 없다. 어떤 도구를 아이들에게 잘 가르쳤더니 굉장히 창의적이고 재미난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내더라…그 도구를 프로그래밍으로 치환하지 않아도 맞는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것이 아이들의 사고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교육으로써 커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는 여전히 불문명하다.

프로그래밍 방식과 언어가 바뀌는 것은 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도 골치다. 교육제도라는 것이 그렇게 유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뀐다고 바꾸는 것에 아닌데, 자칫 잘못 도입했다가 아이들만 헷갈릴 부작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때 학력고사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수능으로 바뀐 상황이 떠오른다.

인터넷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면, 그 이유는 그다지 찾기 힘들다. “이유” “왜”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는 경험만 길게 이야기하거나 어떤 나라에서는 이렇게 한다카더라 나열하거나 혹은 그냥 신념만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왜”는 없다.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된다는 추상적인, 그리고 마치 별 이유없는 정책적인, 혹은 무슨 제품을 파는 마케팅의 포지셔닝처럼 만들지 말고, 장기적으로 왜 그것이 필요한지, 그것으로 어떤 긍정적인 그리고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인지를 연구해서 일반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나는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붙여본다.

Written by charlz

2013년 11월 4일 at 오전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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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개월을 정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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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한테 이야기했으니 아무튼 그동안 궁금하셨던 분들, 이제 여기다 적을 수 있게 됐기에~ 지난주에 타블로소프트웨어에서 온 오퍼를 받아들여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조인하게 되었습니다^^ 퍼포먼스 전문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옮기는 것이라 어깨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옮기는 회사에 대해서 약간 설명하자면, DATA라는 멋진(?) 심볼로 몇주전에 상장한 회사이구요. 기본적으로 데이타+애널리틱스+비쥬얼라이제이션의 세가지 대세인 (버즈) 키워드로 설명되는 회사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야는 BI(Business Intelligence)로 분류하구요. 그러니까…(빅)데이타를 “쉽게” 분석/비쥬얼라이즈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웬만한 데이타소스는 대부분 지원하고, 구글/페이스북등 알만한 소프트웨어 회사 여럿에서도 내부 데이타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답니다. 제가 하게 될 일은 역시나 퍼포먼스 엔지니어링이구요, 제품의 특징이 기술 문외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기 때문에, 제품이 얼마나 빠른가/빠르게 처리하는가하는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나봅니다. 대량의 데이타를 몇시간 스크립트를 돌리는 수많은 제품들과의 차별화랄까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다니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회사를 나와서 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다른데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접한 분들이 해주시는 이야기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1. 왜 안정적인데다가 불만도 없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냐, 그냥 있어라.
  2.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안해보고 후회하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해봐라.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일단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도 그다지 없기도 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팀 하나 있으면 그게 최종 목표랄까요. 지금의 직장도 배를 잘만 타면 안정을 추구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습니다. 여기에서의 보통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임금 또한 굳이 우리나라와 비교하지 않아도 높은 편이구요. 복지를 포함한 장점을 이야기하다보면 길고 길겁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자신을 커다란 기계장치의 톱니바퀴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누구나 어딘가에서 세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톱니바퀴이고, 그것에 꼭 나쁜 비유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톱니바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죠. 톱니바퀴가 빠지면 기계는 안돌아가겠지만, 문제는 그 톱니바퀴는 널려있고, 빠지면 비슷하게 생긴 톱니바퀴를 끼워넣으면 바로 돌아갑니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란 없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느낌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이지 않을까요. Bing에서 일을 한지 2년 반이 되었는데, 그동안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런 느낌에 일조를 했겠습니다. 오래다니면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를 익히면서 알게되는 독이 번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회사를 가던간에 그런 톱니바퀴 비유가 사실(fact)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꼭 개인이 그렇게 느낄 가능성이 많은 문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개인이 어떻게 느끼고 어떤 생각으로 다니느냐는 회사의 문화와 커다란 관련성이 있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문화는 그 개인 평가 모델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힘들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매년 평가때마다 그런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렇게 해야만 좋은 제품이 나올리는 없고, 그렇지 않는 곳도 세상에 널려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은 곳이 덜 안정적이고 더 치열한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느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느냐.

그런 느낌은 개인의 느낌이겠습니다. 미국에서 다닌 회사는 이 하나이기에 이런 생각은 다른 회사를 다니는 입장에서 마찬가지일 수도 있구요. 여전히 이 회사는 많은 이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것은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년 9월이면 10년을 채우는데 말이죠, 그 정도 다녔으면 억지로 버틴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번달이 아마도 이 회사에서의 105개월째일겁니다.

또한가지, 위의 <분류1>이 더 크게 다가온 이유는 우리나라의 문화에도 큰 영향이 있을겁니다. 우리나라는 그놈의 “근속”이 중요한 나라입니다. 오래 다닐수록 생기는 이득이 큽니다. 예를 들어서 퇴직금이라든지, 근속 연수에 따른 보너스, 그리고 연금 등등.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그런 이야기가 와닿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안정”이라고 하면 그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겠죠.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런 큰 메리트가 없습니다. 되려, 옮기면 아쉽지만, 그 사람이 다른데서 좋은 경험을 하고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은 타당한 가정이겠죠, 그런데 옮긴다고 후지게 대우를 하면 다시 돌아오고 싶겠습니까. 후회를 한다면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좋아하는 일(퍼포먼스엔지니어링) + 좋은 키워드(데이타+비주얼라이제이션) + 적당한 대우(연봉+직책/급) + 나 개인에게 적절한 문화(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중간쯤) + 넉넉한 회사(갓 IPO) + 알파. 이 정도면 움직일만하지 않겠습니까.

1995년 5월의 처음으로 내가 직장에서 뭔가를 만드는구나 하면서 받은 느낌을 다시 느낀다는 사실에 두근두근합니다. 성장하면서 생기는 영향력이 다르기에 – 그 무게도 다르겠죠 – 그 느낌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느낌입니다,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말이죠. 그런 것을 놓치는 후회는 안하려고 합니다. “차라리”라는 말도 너무 가볍습니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입맛에 맞는 좋은 기회를 주겠다는데 마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죠.^^ 아직 그런 것을 거부하고 안정을 외칠 정도로 많이 살지를 못했습니다. 해서 인생에 획을 하나 또 딱 그어봅니다.

앞으로 장삿꾼마냥 제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ㅎㅎㅎ

Written by charlz

2013년 6월 3일 at 오후 2:24

PersonalStuff에 게시됨

40을 향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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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떤 연예인이 가장 이쁠때 누드집을 찍어서 남겨두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기사를 본 것 같다. 그 피크인 시절/시점을 아름답게 남긴다는 그런 뉘앙스였을것같다. 꽤 오래전이다. 하도 누드집이 판을 쳐서 웬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누드집을 낸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에 31이 되면서 40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딱히 30대라는 어떤 감상이나 흔히 이야기하는 “30이라니!”가 없었기에, 30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고, 31가 되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40이 되는 순간, 되돌아본 10년이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어떤 모습이고 싶은걸까. 마흔살 개발자..(혹은 마흔살 관리자?).

20살이 돼서 30살을 그렸던 것처럼 30대를 접어들면서 생각해본 마흔을 그려보면, 웬지 그 흔한 개발자 스테레오타입이 떠오른다. 운동이라고는 회의실로 오가면서 걸어다니는 것 외에는 거의 없는데다가, 처자식과 업무로 얼룩진 삶의 무게에 찌들은 모습이랄까. 40살의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나이 되어봐라”하고 간이 안좋은지 황달기의 눈으로 나에게 한마디 던지는 것 같았다. 생각이 너무 극단으로 멀리 간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놈의 개발자 스테레오타입

간이 안좋고 위가 안좋고 허리가 안좋고, 주변에 선배들의 모습(나는 그런 선배들이 주변에 더 많았던 것일까)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역시 30대 계획은 건강에서 출발해야된다! 밥을 남기는 것처럼 20대때의 체력을 남기는 것이 아까워 바닥까지 써버린 것을 40대를 위해 쓰면서도 좀 남겨서 저축해야되는 시기랄까.

가장 이쁠때는 아니지만 아마도 인생이 뭔가 조금은 익어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넉넉훈훈한 아저씨가 되어있을 것인가 아니면,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싫은 그런 지경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건강하게 먹고 체력을 가꿔서 흐뭇한 정신과 몸매로 마흔이라는 방점을 찍을 것인가. 뭔가 밝은 얼굴일까, 아니면 퀭한 다크서클을 뽀샵을 가려야되는 그런 결과이게 될 것인가. 내가 무슨 누드집을 찍겠다는 것은 아니고 – 뭔 민폐냐그게 – 40살되는 해에 잘 찍는 사진사를 고용해서 내 모습을 찍자는 생각을 했다.

마흔에 찍은 사진을 서른의 나에게 보낼 수 있는 공상과학적인 방법이 있다면야 모를까,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마흔에 찍을 사진을 위해 서른의 10년을 준비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생각해본 계획이었다고 할까. 뭐 어차피 내 외모는 정해져(누구보라고 성형할텨?) 빼도 박도 못하는거니까 상관없고, 그보다는 내가 얼마나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가꾸고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내 얼굴에 그리고 내 모습에 그 세월이 담겨서 찍히게 되겠느냐는 그런 맹랑한 생각.

현실적으로야 물론 내공의 사진작가라면 뭔가 장점을 담은 사진을 남겨줄테니까 이러나 저러나 10년의 세월보다는 그분의 실력이 그 사진들을 더 좌우하게 되겠지만서도, 그런 좌뇌스런 생각은 제쳐두고 좀 더 멋진 나이에 대한 로망으로 바라보면서 그 10년을 가꾸면 뭔가 참 흐뭇한 인생이지 않을까. 사진은 내일이라도 찍을 수 있지만, 계획해서 찍는 사진이라면 게다가 10년전 계획해서 찍는 사진이라면 뭔가 비장하게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별것 아닌 계획 아닌 계획이지만, 오늘도 몸과 마음 모두 고이고 해이해지지 않게 그런 마음의 고지를 향해서 뛴다.

Written by charlz

2013년 5월 5일 at 오후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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