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네 소프트웨어 세상 [본점]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면 뭐든지 – I no longer work for Microsoft.

그냥 개발자

with 13 comments

나는 개발자다. 기억도 안나는 7살 이전부터 베이직 개발자였다. 그런데, 나는 코딩에는 소질이 별로 없다. 평생 프로그램을 짜왔는데, 평생 컴퓨터를 사용해서 문제 해결하는 능력만 키워왔는데, 이상하게도 코딩에는 소질이 없다. 코딩에 소질이 없는데도 지금 여기 이 소프트웨어 회사에 흘러들어와 코딩을 하고 앉아있다. 새벽 2시에.

왜 나는 코딩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걸까.

하나. 십년도 더 차이나는 친구들이랑 경쟁하고 있으면서 드는 생각이, 아! 내가 저때에도 저만큼은 했는데…근데 지금도 그만큼하네. 젠장. 코딩실력이 늘었냐하면, 그건 그다지이다. 지식/경험 이런건 짬밥이 늘었을지는 몰라도, 코딩 DNA따위는 없다.

둘. 남들은 인문학하다고 오고, 물리학하다가 오고, 미술하다가 오고 그런데도 코딩 잘한다. 난 컴퓨터공학 전공하고 평생 코딩만했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차이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훨씬 빠른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단축키를 더 아는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레퍼런스를 덜 보는 것도 아니다.

셋. 남의 코드를 보는 능력이 늘었다고 지 코드가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코드를 추구하는 개발자들이랑 있으면, 참…경쟁하고 싶지가 않다. 완벽보다는 실용이다. 역시 그런 생각에 코딩은 별로 늘지를 않는다. 그런 생각이 있는게 코딩에 소질이 없는게 아닐까.ㅋ

그런데, 왜 코딩을 하고 있냐하는 심오한 질문에는 답이 있다. 평생을 좋아서 하고 있으니까. 남들이 내 코딩 실력을 평가할 일도 별로 없거니와, 평가받아서 기분나쁜 상황은 없고 대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음에 더 신난다. 신나서 하기에 졸려 죽겠지만 새벽 2시에 내일 아그들이 빨리 처리하라고 코드리뷰 3개를 보내고 있다.

코딩 실력따위, 소질따위 알게 뭐냐. 잘난 수학 천재들 박사들 천지면 뭐 어때, 좋은 대학 성적 좋은 애들한테 둘러쌓여 가랑이 찢어지면 또 어떠냐. 나는 다른거 생각해본적이 없는 코딩 실력 맴도는 그저그런 후천적인 개발자다. 그래도 좋다. 뭐 코딩은 뭐라건 개발자로서는 서당개마냥 중간은 하니까 안짤리고 남아있는거 아니겠나.

괜히 애틋하게 사랑고백하고 싶은 밤이라 고백해본다.

– 2013/04/26

Written by charlz

2013년 4월 26일 , 시간: 오전 1:44

Uncategorized에 게시됨

13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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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가수다 이전부터 이 바닥은 암암리에 경연이 유행이었던 것 같기도… 그러나 사실은 이런 분들이랑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몇몇 그리운 동료들이 생각나네요.

    Hongjoo Lee

    2013년 4월 26일 at 오전 3:49

    • 잘못 올리신 댓글은 지웠습니다.^^ 경연이라면 경진대회나 코드페스트/해커톤 같은거 말씀이신가요? 가서 슈퍼코더들 구경하는 것도 재밌죠.ㅎㅎㅎ

      charlz

      2013년 4월 26일 at 오후 4:10

  2. 마음이 두근거리는 고백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김우승

    2013년 4월 26일 at 오전 3:56

    • 하세요. 마음에 담아두면 병됩니다.ㅋㅋㅋ

      charlz

      2013년 4월 26일 at 오후 4:10

  3.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가끔은 무언가 고백 하고 싶어지는 밤이 있죠..
    라고 쓰면서 업무 메일을 이 시간까지 쓰고 있는 여성개발자 1인입니다;ㅂ;

    Minjoo Jang

    2013년 4월 26일 at 오전 5:20

  4. 멋지긴… 그나 저나 ‘여지가 많음에’를 ‘여자가 많음에’로 읽은 나는 뭐냐? OTL
    나는 수학적/분석적 사고가 떨어지는데, 통계나 수치 볼 일이 많아지면 한계를 느껴서 답답한데.
    철수처럼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고 내 일을 사랑하는 편이 훨씬 더 좋겠다.

    환상

    2013년 4월 28일 at 오후 4:38

  5. 좋은글 감사합니다. 새벽에 읽고 이제서야 인사글 남기네요, 종종 찾아 오겠습니다!

    Jinwoo Kim

    2013년 4월 29일 at 오전 1:35

  6. 솔직한 글은 언제나 마음을 울리네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아크몬드

    2013년 5월 13일 at 오후 6:02

  7. […] 그냥 개발자 – 코딩에 소질없는 개발자를 위한 이야기. 즉, 내 이야기. […]

  8. 코딩을 시적인 표현으로 승화시킨 작성자님에게 감탄하고 갑니다.

    익명

    2014년 6월 28일 at 오전 7:35

  9. […] 1 여전히 [그냥 개발자]입니다. […]

  10. 주제 넘게 한말씀 드리면,
    아마도 지금까지 코딩을 하고 있으셔서 ‘내가 예전에 저만큼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실 이유와 필요가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고요.

    결론은, 찰스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

    이재성

    2015년 5월 28일 at 오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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