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네 소프트웨어 세상 [본점]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면 뭐든지 – I no longer work for Microsoft.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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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히포크라테스가 적은 아포리즘의 첫 구절이다. “인생은 짧다…”

히포크라테스는 자그마치 약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인물이다. 멀리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페르시아에게 이겼다는 승전보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뛴 페리디피데스의 시대이다. (비록 기나긴 지구 역사로 치면 인터넷이 생겨나기 바로 직전이지만) 그 먼 옛날의 문맥을 생각하면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이해가 간다. 지금은 트위터에 한줄 적고 RT할 것을 목숨걸고 뛰어 전해야했던 그런 문맥 말이다. 그 당시에는 자전거조차도 없었고, 시간을 초단위로 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소식을 전하는 효율따위, 일개 전령에게 말을 주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시공간의 개념이 너무나도 다른 문맥이다.

먼 미래, 혹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또다른 시공간 혁명이 이뤄져서 지금의 문맥이 또다시 길게 느껴지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인간은 “인생은 길다”할 정도로 시간을 늘려왔다. 단순히 의학에 의해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을 이동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빛의 속도/전자의 이동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도 하고, 시간이라는 녀석을 초단위로 잘근잘근 씹을 수 있도록 시계는 손목이나 눈앞 화면에 언제나 존재하게되었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혹여, 공중전화박스를 통해 히포크라테스를 데려와서 이런 상황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과연 히포크라테스는 같은 아포리즘을 사용했을까.

1년이고 10년이고 인생을 보내고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라고 한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초단위로 모든 것을 떠올려서 재현하지는 않는다. 내가 10년을 살았다고 재현하는데 10년이 걸릴리는 없다. 어떤 것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성취한 것들, 중요한 순간들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올해 이룩한 것들 내게 중요했던 순간들만을 기억나는대로만 요약하면, 내가 보낸 시간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내 시간은 그 몇가지로 대표되어 마치 굉장히 짧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를리없다.

하루에 3끼를 먹는다면, 1년 365일 1095끼를 먹는다. 그 중에서 굉장히 맛있는 식사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만든 음식들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외식을 했거나 파티에 갔을 수도 있다. 진짜 맛이 없어서 다시는 먹지 않으리라 생각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자그마치 1년에 1095번이다. 고대 그리스였다면,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었을테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것뿐만 아니라 그 느낌을 피드백으로 세상에 전달하고 있다. 매일 신문 1면만 대충 쳐다 봤어도 365*4(1면 평균 기사수)가지이다. 웹브라우징으로 보는 기사는 몇개나 될까? 하루에 듣는 소식/뉴스만해도 엄청나고 담배한대 피면서 나누고, 댓글을 달면서 표현한다. 한달에 책 한권 읽기 어렵다 생각해도 정규교육 6+3+3년동안 읽은 교과서 수만해도 엄청난데다 시청각 교육도 얼마나 발전했는가. 학문이 발달하기는 커녕 활자라는 것도 없이 몇권 안되는 책을 가지고 간단한 이론 하나하나 자신이 직접 만들고 실험해야했던 히선생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참 대단한것이다. 히선생이 평생 한 일을 나열하고 내가 한 일을 나열해서 비교하면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때의 인생과 지금의 인생의 가치는 다르지 않더라도 밀도의 차이는 굉장한 것이다.

나의 이 인생은 내가 사는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이다. 내 인생은 정말 남들에게 내세울 뭔가하는 몇가지로 “짧게” 대표되어야하는 것일까. 스티브잡스의 인생은 600페이지 분량밖에 안되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묶음인 것일까. 인생은 기억으로 그 길이를 평가해야만 하는 것일까. 되돌아가고픈 과거의 아쉬움이 인생이 짧기 때문인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엄청나게 밀도 높은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 밀도를 업적으로 대표해버리기에는 아까운 나의 인생이다.

연말 한해를 뒤돌아보는 때이다. 뒤돌아볼 기회가 된다면, 참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1월1일부터 365*24*60초를 1초1초 기억나는대로 쭈욱 지금까지의 일을 기억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오늘 하루, 아침에 일어날때부터 혹은 꿈이 기억난다면 꿈부터 시작해서 어떤 것을 이뤘느냐 어떤 가치있는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아침 커피가 어제보다 느낌이 좋았던 작은 변화와 같이 작은 것들까지 놓치지 않고 하루를 생각해보는 방법도 있다.

나는 히포크라테스에게 지금 물어본다면 동의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생은 길다.” 뒤돌아볼때 인생을 짧다할 것이 아니라 되려 여유롭게 앞으로의 1분 1초를 기억할 수 있는 인생으로 길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Written by charlz

2011년 12월 26일 , 시간: 오후 8:52

Uncategorized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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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그런 부분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 작년 초(정확히는 제작년말)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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