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네 소프트웨어 세상 [본점]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면 뭐든지 – I no longer work for Microsoft.

5월, 내가 IT 직업 전선에 뛰어든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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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5월이다. 용산의 삼성 부스(?) 한켠에서 알바처럼 시작한 일은 어느덧 오피스텔의 한켠으로 바뀌어 직업이 되었다.

그 전에 친구 소개로 당시 잘나가던 솔빛조선미디어의 알바로 꼬꼬영(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시디롬 타이틀을 만드는데 시다(?)를 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뭔가를 뚜렷하게 맡은 것이 없는 그냥 알바였다. (영식이 형/광식이 형 잘 있을까…) 알바라도 그때 처음 Netscape 브라우저를 보고 미쳐서 밤새 웹서핑하던 때였지만…아무튼 알바였다.

내게는 95년 5월이 더 중요하다.

제일 처음 한 일이 디렉터(Macromedia Director, 당시 씨디롬 타이틀 만드는 툴들, Asymetric Toolbook과 경쟁하던)로 지니의 요술램프를 만드는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Lingo를 사용하는데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 있어서 extension dll을 만들어 마우스로 마법램프를 문지르면 지니가 나타나는 그런 UI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들었지만, 어디다 사용하지는 못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 별로 상관은 없다. 창업한지 얼마 안되는 회사의 일부로 일을 하게 된 계기라는 것이 더 중요하지.

몇년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같이 고생하던 것들, 인터넷 회선(T1) 공짜로 얻어서 마음껏 사용한 행운, 업무상 신기한 기술들 받아서 이것 저것 해보던 재미, 잘해보겠다고 나가서 되지도 않는 영업도 하기도 하고, 좁디 좁은 업계를 마음껏 구경하기도 하고, 지보다 똑똑한 사람들 잔뜩 만나고 벽을 느껴보기도 하고, 서러워 보기도 하고.

어느덧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렸지만, 난 매번 이맘때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들은 또 하는 똑같은 이야기라고 짜증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의 (변변찮아도) 내가 있게 한 고마운 때이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던 때이고, 내게는 가장 그리운 때이기도 하고, 내 젊음의 커다란 페이지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도 가장 서글퍼했을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꾸 되새긴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한 3~5년차가 되어 대리쯤 달고 나면 머리가 이따시만큼 커져서 나잘난 박사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이라는 측면까지도 모조리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기를 겪는다. 이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잘못된 습관이 대부분(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의식하고 인지한다면 절대적인 것은 아닐테지만 바꾸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 10년이고 20년 지속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나잘난 박사가 정말 잘난 것이라면 상관 없다. 솔직히 잘나면 어떻게 하든 잘난만큼은 하니까. 하지만, 머리만 큰데 나잘난 박사 행세라면 조심해야하는 시기다. 잘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때에 이 95년 5월을 생각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맨날 싸우고, 말 안듣고, 사고치면서도 자기 계발에 있어서는 그 시기를 생각하면서 공부했다.

그 이후에 또 한번(혹은 여러번)의 고비가 온다 – 이 경우는 평생 안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너리즘이라고나 할까, 내가 발전이 없는 것같기도 하고, 뭘하는지 모르겠고, (특히 우리나라 환경에서) 앞날이 잘 안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포기하고 딴데로 갈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 그런 때이다.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노동만을 하다가 지치게 되는 것이다. 앞만보고 계속 달리다보니 내가 왜 달리는지 잊어버리고 숨만 차게 되는 것이다.

미드 로스트의 시즌 4 “The Constant”라는 (멋진) 에피소드를 보면 – 스포일러 경고! – 데스먼드가 과거로 자꾸 가게되는 현상을 겪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자신을 현실에 묶어둘 수 있는 어떤 Constant였었다. 내가 (내맘대로) 대입해보면 과거로의 회귀는 매너리즘과 같은 어떤 메타포일테고, 자꾸 그런 것을 고민하는 것으로 과거와 현실을 왔다 갔다하다가 결국 죽는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것으로 나를 현실에 잡아둘 수 있는 그러니까 현실을 facilitate할 수 있게하는 그 무언가가 그 Constant이고, 나는 과거의 그 무엇으로 95년 5월을 택한 것이다. (로스트에서는 사랑이었지만;;)

뭐, 그것이 되려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비슷한 기회가 와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잘 안다 – 그렇다고 또 앞으로 그때보다 더 멋진 미래의 뭔가가 없을것이라고 비관하는 것도 아니다. 뭐,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병에 걸릴만한 로맨티스트도 아니고, 나에게는 그냥 아름다운 추억이자, Constant다.

이런 Constant가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파하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혹여 이 이야기가 솔깃하다면 지금 어떤 위치에 있건 이런 Constant를 만들어보거나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charlz

2008년 6월 17일 , 시간: 오전 12:42

Uncategorized에 게시됨

3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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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식이형 n사 가 있어요.

    Channy

    2008년 6월 17일 at 오전 2:52

  2. 디렉터, 링고, 지니의 요술램프!
    어릴 적 이야기네요..ㅎㅎ

    아크몬드

    2008년 6월 17일 at 오전 4:00

  3. 저도 머리만 큰 나잘난 박사가 안되어야될텐데요 ^^;

    warkyman

    2008년 6월 20일 at 오후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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