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네 소프트웨어 세상 [본점]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면 뭐든지 – I no longer work for Microsoft.

그리고 페이스북 그래프 검색,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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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기술의 발전이 펜듈럼(Pendulum)처럼 왔다 갔다하는 예들은 수없이 많다. 어느쪽으로 흐르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저쪽으로 흐른다. 더 작아지기 위한 경쟁을 하더니 더 커지기 위한 경쟁을 한다. 풀파워 PC가 대세인가 했더니 스마트폰에 다 들어있는 모바일 컴퓨팅이 대세다. 스토리지 디바이스들이 편해지면서 데이타가 안방으로 들어오는듯 하더니 다시 클라우드란다. 디렉토리형의 포털이 최강이라고 야후가 뜨더니 검색이 최강이라고 구글이 눌러버린다. 왔다 갔다, 흐름을 잘 파악하는 놈들이 항상 최고가 된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 펜듈럼이 너무 빨라 더이상 펜듈럼이라고 부를 수가 없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작아지는 속도도 커지는 속도도 서로 우리가 다음 단계라고 외치면서 IT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큰 것이 목표이면 더 크게 작은 것이 목표이면 더 작게, 둘의 밸런스가 목표이면 끝장나는 엔지니어링으로, 세상의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커지다 못해 작은 것을 엮어서 크게 만들고, 작아지다 못해 나노 크기의 로봇을 만든다. 펜듈럼이라고 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그 중간 지점의 disruption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도 있고, 크건 작건 서로 convergence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뭐 당연히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인터넷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이다. 커지는 트렌드면 작아지는 놈이 묻혔고, 작아지는 트렌드면 커지는 놈이 묻혔지만, 인터넷은 더이상 트렌드를 이렇게 한쪽으로 놔두지 않을 네트웍을 만들었다. 다를 것 같은 두 노드에 링크가 생기면서 단순히 노드에 링크가 생기는 것 뿐만아니라 두 노드가 속한 다른 네트웍이 합쳐지게 된다. 새로운 트렌드에 의해서 새로운 연구가 생겨나고, 새로운 연구는 생각치 못한 결합으로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발전해간다.

현대의 기술에서 개인이라는 것이 더 부각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전의 나는 거시적으로 항상 통계의 일부일 뿐이었다. 세일즈 데이타에서 +1이었을 뿐이고, 웹사이트에 수십만 클릭 중에서 하나의 클릭이고, 어떤 트렌드에 리트윗 하나더였고, 게시판에 불평을 하나 올린 한 글쪼가리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개인과 통계의 사이는 더이상 펜듈럼 관계가 아니다. 개인이 부각되는 정도는 이전보다 커졌고, 통계를 움직일 수 있는 요소로 개인이 더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10년 아니 20년전부터 개인화(Personalization/Customization)를 위한 기술이 뜰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정작 개인화 서비스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 제대로 뜬 것이 “한가지도” 없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와서 드디어 개인을 개인 데이타를 가진 한 개체가 아닌 네트웍 상에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개체로서 개인화라는 것이 말이 된다는 것이 보이고 있다. 즉 개인을 붕 떠있는 숫자가 달린 개체가 아니라 에너지를 발산하고 받는 전체 안에서의 존재로서 인정하는 기술로 변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나의 숫자라면, 그 숫자는 무엇에 의해서 정해질까. IQ라면 얼마, 키라면 얼마. 이 숫자는 상대적으로 봐야할 숫자들이다. 나를 독방에 있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개인화”를 하면, 그게 얼마나 개인화된 것일까. 오늘 IQ를 재고 좀 더 지나고 나서 IQ를 또 재면 같게 나올까? 대상을 2명으로 늘려보자. 2명을 두고 둘의 숫자에 맞춰서 다른 서비스를 하는 것이 “개인화”이다. 하지만, 이 둘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숫자이다. 단순히 이 둘의 숫자 각각으로 각각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상대성으로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A와 B 둘이라고 하자. A가 키가 커서 큰키에 맞춘 서비스를 했다고 하자. B는 A보다 수치적으로 크다고 수집했다. “개인화”서비스라면 둘다 “같은” 큰키 서비스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인 키를 생각하면 A는 큰키 서비스, B는 더 큰키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제대로된 “개인화”가 아닐까. (굳이 키를 예로 든 것은 매우 랜덤하다. 정말.) 이것이 둘이 아니고 셋, 스물, 백삼십, 이렇게 늘어났다고 상상해보면 그 속에서 나의 상대성, 그리고 나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졌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홀로 독방에서 산다면 상대성이 필요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난 친구들 그룹에 따라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어떤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그 상대성을 가져야되는데, 이는 쉽지 않다. 그것이 “개인화”였다.

대충 15년전 페이지랭크 한가지 신호를 가지고 구글은 검색엔진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는 호응을 얻었다. 물론 “개인”이라는 요소보다는 “링크” 즉 “페이지”를 주체로 하는 패러다임이었지만, 개인의 신호가 통계적으로 묻어있는 그 신호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이런 상대성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가를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의 검색 엔진은 “페이지”나 “클릭”같은 기계적인 신호 수백가지를 가지고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삽질중이다. 물론 이런 검색엔진도 수없이 “개인화”를 시도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개인의 정보를 사회적인 개인이 아니라 독립된 한 개인의 정보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모든 인간이 각자 자기 섬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가정한 방식으로. 이 사람은 이런 검색을 많이 했으니 이런 결과가 더 효율적이겠지식으로. 하지만, 이는 역시나 인과관계에서 결과를 바탕으로 유추한 기계적인 신호이다. 하다못해 엄청난 양의 데이타를 수집하는 구글 애널리틱스도 광고를 기준으로 하는 기계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였다. 이를 토대로 개인을 분석하고 유추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신호이다.

이렇게 사용자의 의도를 캐내서 그에 맞는 결과를 제공하는 서비스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 이 문맥(분야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은 다양한 신호로 계산하여 추정하거나 유추된다. 하지만, 어떤 답을 추정하는 것과 사용자가 제공하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것도 사용자의 동의 없이 수집했다가는 큰일난다. 똑똑한 구글이 이를 눈치 못챌리가 없지만, (당연히) 기존의 것을 버릴 수는 없었고 갑자기 사용자들에게 스탠스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러는 새에 페이스북은 그런 데이타를 처음부터 수집할 요량으로 이를 꽉깨물고 마구 수집해갔고, 구글은 도저히 안되겠다! 구글에 뭘 좀 더하자(구글+)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페이스북에는 자발적인 문맥 신호들로 가득하다. 내 나이나 생일, 내가 갔던 곳, 내 친구들 등 explicit한 정보에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사진속 묻힌 정보들,  내 친구들이 들은 음악들 중에서 선호하는 것들등의 정보를 사용자가 “마구” (반)자발적으로 제공한다 – 구글은 수집에 익숙해있지만, 페북은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데에 익숙하다. 이들은 기계적인 신호가 아니다. 위에서 예를 든 A와 B처럼 개개인의 상대성과 비슷한 신호이다. 소셜이라는 기술적인 요소는 단순히 한 개인이 소셜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혹은 있도록 enable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을 독방에서 사는 개인이 아니라 소셜한 개인으로 보고 서비스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개인이 이전보다 더 소셜해진 것이 주가 아니라, 개인은 이미 소셜했는데 그런 요소는 개인을 파악하는데에 사용하지 못하고(혹은 안하고 혹은 할 생각 조차 못하고 )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소셜”서비스가 개인을 홀로 독거하는 사람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에 왜 검색기능이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검색엔진에서 수집도 못하고, 검색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고. 옛날에 무슨무슨 포스팅을 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페북의 대답은, 그냥 잊어라…혹은 타임라인에서 하루종일 찾아보든가. 가까운 미래에 추가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그 기능은 없다. 페북에서 웹검색? 빙(Bing)검색 결과를 보여주겠다. 혹은 그냥 Bing의 소셜기능이나 구글을 써라. 하지만, 구글이 기존의 검색 방식에 발목이 잡혀있는동안 대신 우리는 이런거 만들었다: 그래프 검색.

그래프 검색은 기존처럼 페이지나 쿼리 기반의 가중치를 둔 검색 서비스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제공된 (그리고 이를 통해 연결된) 그래프 데이타를 기반으로 만든 특정 신호 검색이다. 일단 페북에서 검색을 한다는 자체가 전혀 다른 문맥이라는 점을 캐치한 것이기도 하다. 네이버처럼 올인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 그것이 모바일로 넘어갈때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 굳이 페북에 일반 검색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기존 검색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기능이다. 어차피 “내 (페북)친구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은?”이라는 검색은 검색엔진에서 답을 주지 못하는 섹터이다. 페북 그래프 검색은 처음에는 4가지 종류의 결과를 제공한다고 한다: People, Photo, Places, Interest. 4가지밖에 안된다고 하지만, 이 4가지가 얼마나 큰 것들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람/장소/좋아요 검색은 이미 단순 이름 매칭으로 맨위의 검색창에서 일부 가능했고, 사진은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페북이니 중요한 한 축이다. 이 기존의 방식에 날개를 단 격이다.

페북 그래프 검색은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신호를 더 정제하는 것에 잇점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레스토랑 리뷰와 아는 사람의 레스토랑 리뷰의 차이랄까. 기존의 검색 엔진들은 전자를 (수집해서) 제공했고, 페이스북과 빙의 결합은 후자를 제공하게된다. 검색 엔진은 문서와 링크를 타고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문맥을 유추한다. 지식그래프 검색은 사람들이 제공한 정보를 타고 문맥을 제공한다. 소셜 서비스내에서의 검색로써는 분명 정보의 신뢰성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명사/동사 기반의 오픈 그래프의 확장도 생각할 일이다. 사람이 키워드, 아이콘, 브랜드, 프로필사진, 등등 하나의 대표성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검색된 문서 결과가 수천만 혹은 수억 페이지면 뭐하나. 이걸 다 볼건 아니지않나.

물론 문제는 산재해 있다. 영어 자연어 검색이니 다른 언어는 어떻게 될런지도 모르고, 또 개인정보의 공개 비공개의 이슈가 또 있고, 거기에 이를 모네타이즈하게될 것이 뻔한데 그에 대한 걱정도 있다. 그래프검색 SEO도 나올 것이고, 검색 결과에 광고가 뜨면 일반 검색결과 페이지보다 흉(?)할 수 있다. 개인정보 속에 광고가 들어가는 것은 더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타임라인에 Sponsored 포스트가 나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만이 많기도 한데 여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는데 누른 것처럼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또 사망한 사람이 좋아요를 누를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노이즈 신호들은 더 정확한 결과를 보여줘야하는 이 검색 서비스에서 더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여기서 검색되는 데이타가 엄청나게 크지만, 모두 페북 내의 데이타라는 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유행이 지나서 페북을 덜 쓰게 된다면 데이타의 신뢰도는 시간축 신호로 인해서 낮아질 수도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존 같은 서비스를 생각해본다. 아마존은 강력한 컨텐트를 가지고 있다. 제품의 팩트와 함께 제품 리뷰와 구매정보 그리고 선호 데이타이다. 하지만, 간단히 내 친구의 제품 리뷰로의 연결은 쉽지않다. 추천하거나 선물하거나 혹은 목록을 만들어서 공유하는 등은 할 수 있지만, 페북과 같은 서비스가 쉽지 않다. 아직도 개인은 독방에서 살고 있고, 옆방의 개인과는 벽을 통해서 간간히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프 검색과 같은 서비스가 좀 더 확장될 수 있다면, 이런 정보에 날개가 달릴 날은 멀지 않은 것 같다. 또다른 disruption을 기대해본다. 어차피 내 정보를 가져갈 것이면 기왕이면 제대로 활용 좀 해주라.

Written by charlz

2013년 1월 16일 at 오후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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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Aaron Sw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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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약 150,000. 십오만명이 사망한다. 이 중에서 50,000명이 나이때문이 아닌 이유로 사망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100명이 –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 죽음 모두가 슬픈 일이며, 어떤 상황이었건간에 소중한 한 목숨이었으며, 어떤 경우이건간에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무언가에 의한 희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100이라는 큰 수의 소중한 이야기에 귀를 귀울일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알고자해도 알 수가 없다. 단지 그 전체를 대변하여 부각되는 우리의 귀에 들어오는 소식을 통해 슬퍼한다.

오늘도 내가 잘 모르는 한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상에 울려퍼진다. 이야기꾼이 전한 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의 죽음으로 본적도 없는 나에게 한마디를 던진 것이고, 나는 이 사람 그리고 다른 모든 죽음에 잠시나마 시간을 멈추고 슬퍼한다. 듣지 못한 다른 이야기들을 애도하며, 들리는 이야기에 귀를 귀울인다.

이 사람은 이렇게 죽음으로 이야기를 전하려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을 한 사람이었고 이것이 아마 그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죽음 이전에 그가 한 일에 작은 경의를 표한다.

모두 R.I.P.

Written by charlz

2013년 1월 12일 at 오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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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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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제니퍼소프트 이야기들을 읽는다. 여러가지 다양한 (신기한) 복지들을 보면서 이들은 이 회사의 고유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7시간 근무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부러움(?)이랄까…이 부분은 제니퍼소프트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7시간은 커녕 8시간도 모자라 야근하는 환경. 마치 서울의 야경이 우리나라의 야근환경의 오마주처럼 회자되는 농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에 그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야근은 끝내야할 업무를 끝내지 못하고 시간 외로 일을 하는 것이겠지. 물론, 야근 수당때문에 남는 사람도 있고, 고과를 위해 마지못해 남는 사람도 있고,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서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겠지만, 이는 개발자들이 야근을 많아하는 것으로 생기는 불만과 조금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된다.

지속적인 야근이란 잘못된 업무 대비 시간 estimate(추정?산정?) 방식의 답습에서 오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에도 야근은 당연히 있지만, 지속적인 어떤 일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estimate으로 인한 페널티로 다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움이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야근이 대부분이다.

대개의 estimate은 다음과 같이 이뤄지지 않을까:

  1. “언제까지 이거이거해 해” – 기간이 주어지고 업무가 주어진다. 선택이 없다.
  2. “이거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나” – 업무가 주어지고 기간을 정한다.
  3. “이때이때까지 얼만큼 할 수 있나” – 기간이 주어지고 업무를 조율한다.

야근개발자의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1이 계속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2와 3을 키우기 많이 힘든 것 같다. 애초에 감각이 있어서 이를 빨리 캐치할 수 있다면야 모를까, 그 능력을 키우기위한 환경이 아니기에 빨리 습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쉽게도 1이 많고 2와 3의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한에는 야근은 반복되기 쉽다. 시간내에 할 수 있는 능력치를 자신도 모르고, 우격다짐으로 늦게까지 – 혹은 밤새 –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희생되는 것은 개발자 개인 뿐만아니라 제품의 품질이다. 다시말해 기간과 업무를 제어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품질과 개인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1의 상황이라도 2와 3을 최소한 생각하고 그걸 바탕으로 소위 영어로 “Commitment”(해당 기간내에 해당하는 만큼을 하겠다는 공언 혹은 개인의 다짐)를 하는 연습을 해야된다. 지키면, 다음에는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못지키면 다음에는 그만큼을 할 능력을 키우거나 그것보다 덜 할당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틀려도 발전하면 된다는 것이겠다.

쥬니어 개발자들이 – 혹은 시니어 조차도 – 흔히 estimate을 요할때에 “변수가 많아서”라는 말로 산정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무한대의 시간을 가정하는 프로젝트는 없다. 게다가 솔직히 책임회피용으로 쓰는 변명일때도 많다. 어떤 일정 기간이 정해져있지만, 나는 거기에 Commitment를 한게 아니고, 누군가 정한 것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현실적인 estimate을 제시하지 않으면 다시 1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또다시 담배피러 모여서 토로하는 토픽에 포함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그에 맞게 일을 하고 다음에는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일리가 없다. 계속 1만 반복하면, 일에대한 애착도 줄어들고 자신의 능력을 측정하기 힘들어지고 또 그만큼 무리하게 일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이 estimate을 제시할 상황이 되면, 두리뭉실한 측정치를 가지고 다시 1로 돌아가게된다. 업무량과 시간이 변수가 아닌 상황에서는 과학적으로 이들의 상관관계를 밝힐 수 없지 않나.

2와 3의 장점은 자기 발전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측정이라는 것은 그 데이타를 통해서 다음 방향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내 시간관리와도 맞물릴 수 있고, 내 능력의 한계를 더 늘리기 위해서 그 한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서는) 무엇보다도 장기적으로 야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의미가 이 글에서는 가장 크겠다.^^

1을 통해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오래하는 것으로 시니어(선임)가 되면 보통은 그 일에대해 리듬을 알고 공수를 찍어내듯이 습관처럼 추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그 능력이 다른 곳에는 잘 적용이 안된다. 사실은 그런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특정 일을 잘 알게 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근하던 방식이었다면 그것이 그대로 유지가 된다. 그 일만 기차게 잘하고 그 일만 할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후임은 또 야근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꼭 연습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다. 이런건 장기적으로 천천히 구울수 밖에 없는 문화(culture)이다. 나만 바뀌어서는 좀처럼 바꾸기 힘든 문화. 협조을 못얻고 나혼자 튀는 일은 득보다는 실이 되는 문화에서 이렇게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환경이 그렇다고 (후임이 커가는) 다음 세대에서는 그게 바뀌지 말아야된다는 법은 없다. 나는 야근하지만, 나중에 내가 어떤 팀을 리드하게 되면 우리팀은 야근하지 않도록 그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생각해봐야될 일이지 않을까. 지금 환경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보다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한 야근이라면 이런 이야기와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못 산정되는 업무강도로 인한 야근이라면 문화를 조금씩 바꾸는 것으로 좀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Written by charlz

2013년 1월 11일 at 오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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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 키보드에 대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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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평면의 터치 스크린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기본 문자 입력 인터페이스는 소프트 키보드이다. 편리하게도 사용하는 앱의 의도에 따라서 키보드의 키 배열이 편하게 바뀌고, 제안(Suggestion)을 보여주기도 한다. 숫자를 입력하기 위해서 키패드로 바뀌기도 하고, 다국어를 지원하기 위해서 자국의 입력방식(Input Method)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드웨어 키보드라면 고정된 물리적인 모양에 맞춰서 키를 할당해야하지만, 소프트 키보드는 방식에 맞는 키보드를 제공하는 전환이다.

터치스크린의 키보드는 화면 전체의 일부이다. 물리적인 키보드에서는 내가 입력해야되는 키가 어디에 있느냐가 고정되어있는 것에 비해, 터치스크린의 소프트 키보드는 화면에 가이드를 그려준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아이폰의 자동수정 기능을 켜놨다고 하면, 지속적으로 제안된 문자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하는 판단을 통해 키보드가 그려진 영역이 아닌곳에 위치한 화면의 “X”를 눌러야한다. 이를 논리적으로 키보드의 일부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분명 물리적으로는 터치스크린의 일부이다.

터치스크린 키보드 인터페이스는 한마디로 인간이 입력하는데 있어서 오랫동안 우리가 – 우리의 뇌가 – 익숙해져있던 한가지 신호를 건너뛰는 것이다. 우리 뇌는 입력을 위해서 사용했던 문맥(Context) 정보로 키를 구분하는 촉감이 포함되어있었는데, 터치스크린에서는 더이상 그 정보가 사용되지 않는다. 이를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데는 최소한 두가지 경로(Path)가 있다. 기존의 수용 방식을 수정하는 경로와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경로의 두가지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 왜 촉감 정보가 부족하지?”하는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기존에 경로가 없거나 아직 뚜렷하게 생성되지 않은 후자의 경우(신인류)에는 저항없이 경로를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뇌가 전자의 경우에, 경로가 수정되는 일 없이 새로운 경로가 생성되는 케이스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어느 것이 맞는지는 뇌 전문가에게 맡긴다.^^) 그 경우에도 새로 만들어진 경로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 저항이 또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가 어느 경우이건간에(수정되거나 새로생기거나) 더 힘든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반면, 후자는 추상화(Abstraction)가 상당히 다르다. 물리적인 버튼을 누르는 것과 화면에 버튼처럼 추상화한 부분을 누르는 것은 분명 인식 자체가 다르고 인식이 다르면 뇌도 다르게 동작하지 않을까. 촉감을 뺀 시각 정보만으로 판단을 할 경우, 촉감에 드는 사고과정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더 변화에 유연한 경로가 아닐까. 가정이 맞다면, 우리의 뇌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진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여느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을수록(혹은 컴퓨터에 오랫동안 적응해있던 Population일수록) 적응이 힘든 모습을 보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신)인류는 이 평면 인터페이스의 적응에 진화해가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렇게 빠진 촉감이 오류율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보여줬을까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숫자가 있다면 이런 생각이 더 구체적으로 바뀔 수 있을텐데 말이지. 당연히 초기에 터치 디바이스에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나왔을때는, 오류율이 꽤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의 오류율은 진화를 뒷받침해줄지, 아니면 그다지 큰 변화가 없을런지 궁금하다. 순수하게 평면화면에 그려준 키보드 버튼에 인간이 적응하여 보조없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오류율을 낮출 수 있는가 아니면, 통계적으로 적응은 그다지 눈에 띄지(Significant)지 않지만 기술이 이를 (오류수정같은 것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말이다.

물론 미래에는 화면이 울퉁불퉁하게 올라오는 화면이 생겨날 수 있고, 이미 실험적인 기술을 선보인 것이 얼마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술이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이런 관점과는 다르게 Accessibility 측면에 있어서는 더없이 중요한 기술이겠다). 음성인식 UX는 여전히 어없이 불편(anti-seamless)하고, 모바일 기기에서 전화를 걸기 위해서 비접촉식 인터페이스가 유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려면 좀 먼 것 같고…나는 과연 지금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터치스크린 소프트 키보드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소프트웨어를 이해는 하지만, 뇌가 인터페이싱을 위해서 (진화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면 그냥 익숙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변화하고)진화하고 있느냐는 그런 생각.

Written by charlz

2012년 8월 5일 at 오후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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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스타터 제품 후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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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품 후기라기 보다는 전체적인 경험을 간략히 적은 글이다.)

http://www.kickstarter.com/

킥스타터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이 유명한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의 대표격인 사이트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나오는 제품들을 많이 눈여겨보고 있고, 여러 제품들을 구매후원하고 있다. 개중에서 가장 처음 후원한 제품이 루나틱 스타일러스 펜이다. 펜 3개가 50불이라는 생각을 하면 꽤 비싸지만, 후원의 성격이고 첫 후원이었기에 살살 가자고 선택한 제품이었다. 스타일러스를 선택한 것은 그냥 호기심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선택을 했다. 펜 스트로크를 좋아하면서도 직업상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펜을 쓸 일이 짧은 메모/싸인등의 용도 이외에 없는 고로, 일부러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일단 이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할 결심을 했다면, 분명히 생각해야할 것은 “구매”가 아니라 “후원”이라는 것이다. Buyer가 되는 것이 아니라 Backer가 되는 것이다. Backer가 된다는 것은 투자자의 리스크를 떠안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제품을 직접 써볼 수 없는 것은 온라인으로 제품을 보는 것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또한 제품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는 경우 리뷰나 혹은 인지도, 아니면 제품 회사의 이전 경험등 다양한 실경험들을 토대로 제품 구매를 결정하게 되지만, 킥스타터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주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고, 그들이 만든 아마추어 수준의 마케팅 자료(Material)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품의 아이디어에 대한 환상으로 제품 자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이디어의 구현이 제대로된 Execution에 의해 쓸만한 제품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본을 투자하는데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갑을 열어야한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모금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된 제품이 되기 위한 Execution도 돈과는 상관없이 프로젝트의 주체들의 능력과 방식에 달려있다. 한마디로 투자자의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다.

수천 수억의 자금을 들이는 것이 아니고 수불에서 혹여 많게는 백여불을 투자하는 것이지만 망하면 형편없는 결과물로 돈을 날릴 각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리스크)와 함께 그만큼 그에 상응하는 나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사실도 인지해야한다. 킥스타터를 통해서 프로젝트의 경과를 중간중간 포스트를 통해서 접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코멘트를 통해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지만, 많은 후원자가 있는 프로젝트에서의 코멘트는 다양한 색깔이기에 피드백이 묻힐 가능성도 크다. 후원자가 적은 수벽명인 경우에는 그만큼 적은 양의 피드백으로 이들을 일일이 대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한 수천명짜리 후원자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영세(?)한 프로젝트 주체들이 해결하기에 역부족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제품의 A/S나 C/S도 쉽지가 않거나 만족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프로젝트 자체가 단발적이고, 그 회사 혹은 프로젝트 주체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은 이를 분명히한다. 실제 투자와는 다르게 재무상태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내용을 전혀 공개가 되지 않는다.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공개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 따라서 가격 책정도 어떤 전략이나 재무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두리뭉실하게 책정했을 수도 있고 마진율 자체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가격 구조에 서비스가 포함되어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철수네가 후원한 스타일러스의 경우에도 투자를 성공해서 4000여명의 후원과 30만불이라는 큰 금액을 모금한 케이스였는데, 코멘트를 보면 난잡하다 – 물론 본인도 후진 서비스에 다시는 그들 프로젝트를 후원하지 않겠다는 글로 난잡함에 일조했다. 이미 이 회사는 틱톡+루나틱이라는 역대 모금액 9위 프로젝트로 13500여명을 모집/94만불가량을 모금했었던 경력이 있기에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4월에 배송되어야할 제품이 공정상의 문제로 다시 제작되어야했고 딜레이되었다. 딜레이되는 과정에서 후원자들의 불만이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런 회사들이 리스크매니지먼트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좋은 여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송이 시작된 이후에도 관리 미숙과 수많은 달래기성 허위 멘트로 불만을 만들어냈다. 사실과는 다름에도 배송이 다 나갔다는 포스트를 올리는가하면, 제품 하자에 대한 코멘트도 계속해서 쏟아졌다. 철수네도 몇주간의 딜레이 끝에 제품을 받았는데, 그동안 메일로 날라온 이야기는 메일을 보낼때마다 “내일, 이번주말, 이번에는꼭” 이러다가 결국 나중에는 새로 구매하는 사람들 배치(batch)까지 이어져서 받게 되었다 – 즉, 후원자 배치(batch)가 아니라 사이트를 통해서 구매가 가능하게된 이후 배송되는 제품들과 동일한 배치로 받았다는 것이다. 후원의 의미가 하나도 없고, 후원할 필요 없이 제품이 출시된 뒤에 주문한것과 다를바가 없다. 메일 내용도 “아, 미안” 한마디 뿐, 아웃소싱한 Copy&Paste성격의 반복된 Broken Record였다. 게다가 많은 후원자들이 아직 제품을 받지도 않았는데, 성공적이라고 자랑하면서 이벤트, 그것도 스타일러스를 받지도 못했는데 스타일러스로 그린 그림을 올리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역시나 제품을 받기도 전에 종료했다. 제품이 좋은가 안좋은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시는 후원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후원을 후원의 성격이 아닌 PR의 성격으로 숫자에 불과하게 취급하는 주체라면 그다지 후원할 생각이 없다.

물론 이런 경험에서 얻은 것은, 킥스타터에 후원하지 말아야겠다는 것보다는, 신나는/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들에 비해 부족한 실행력을 감안해야되고 실제 재품과 서비스의 기대치를 낮춰야된다는 그런 현실적인 교훈이었다. 후원의 이유는 좋은 제품을 받고자하는 것보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구현하는데에 도움을 주자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원자를 크건작건 속이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할 것이지만.

앞으로 킥스타터의 모델은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고, 굉장한 아이디어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크라우드 투자와 함께 제대로된 Execution을 가이드 받을 수 있도록 시니어급 이상의 BoD(Board of Directors)나 Advisor등의 인적인 후원 또한 가능하도록 더더욱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Written by charlz

2012년 8월 1일 at 오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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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Disruption (5) TV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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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앱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는데, 그 전에 새로운 TV라는 것이 기존의 TV의 익숙함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TV 메타포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서 순서를 바꿨다. 인터넷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모델들이 뼈에 각인되어있을 정도로 익숙한 TV라는 것을 대체하기 위한 가장 큰 작업은 그 익숙함이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왜 TV라고 이름지으면서 TV와는 다른 제품을 내놓고 사람들이 이동하기를 기대할까 – 그건 뭔가 이상한 전략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의 답으로 TV 메타포의 재현이라는 답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폰은 모바일 컴퓨터를 사용자에게 침투시키기 위해서 휴대전화 메타포를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도록 하고, 마치 거기에 가치를 더하는 것처럼 속였(?)다. 마치 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 같지만, 이제는 점차 전화로 사용하는 시간보다 컴퓨터로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다. 요즘에는 문자를 보내는 것인지 카톡/iMessage로 채팅을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그로 인해 엄청났던 문자 수익모델은 더이상 천정을 뚫지 못한다. TV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익숙한 방식들로 포장된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침투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기존의 골수 사용자들이 넘어오게 하기에 어렵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 거대 기업들이 커다란 자본으로 긴 시간동안 버텨서 진화되는 방향이 아니라면 말이다. 즉, 새로운 제품이더라도 안방 TV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TV 메타포를 일부 재현하는 것은 좀 더 유효한 전략일 것이다.

이전 글을 구글 TV를 언급하면서 마무리 했는데, 직접 홈페이지에 가서 한번씩 보길 바란다. 기능들, 솔직히 “좋다”. 케이블도 되고 지상파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웬만한 것 다된다. 앱마켓도 있다. 그런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게 TV냐는 것이다. 이름은 구글 TV지만, 사실 TV라는 생각보다는 이런 저런 기능들을 엮은 컴퓨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굳이 사용자는 이 제품을 사야하는건가. 내가 거실에 있는 TV를 사용하던 방식을 바꿔가면서 사야하는 부가가치는 무엇일까? 기존의 TV에 연결하는 게임기라면, 비슷한 기능들을 제공하는데 이에 비해서 내가 가질 장점은 뭘까. 홈페이지에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게임기를 들여다보자. 게임기는 게임을 하는 장치라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하다. TV에 연결해야된다는 것에는 이미 익숙하다. 일단 게임이 된다! 게임기도 사실은 컴퓨터이고, 요즘 게임기의 기능에 영화를 보는 넷플릭스/훌루라던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기능들은 있거나 추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엑박에도 곧 웹브라우저가 추가될 예정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TV는 이미 가정에 존재하고 익숙한 게임기와 커다란 화면의 TV위에 어떤 부가적인 가치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들을 설명하고자 하거나 사용자에게 이런 부분을 어필시키지 않고 있다. 아마도 설득력이 크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최소한 지금의 전략은 게임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할 수 있는 커다란(꼭 커다랄 필요는 없지만) TV를 대체해야되는 것이다. 일단 더 좋은 TV라고 외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TV라는 사실부터 확실히 밝혀야되지 않을까. TV가 아니고 새로운 “TV보다 좋은” 무언가이고 TV를 대체한다고 마케팅한다해도 일반사용자에게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 좋을만한게 그다지 없다. 대개는 TV에서 안되면 컴퓨터에서 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 된다.

TV를 단순화하면 논리적으로 입력 – 처리 – 출력의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표준화된 외부 장치로부터 입력을 받을 수 있도 있고, 혹은 자체적인 장치를 통해 직접 공중파를 (튜너로) 수신하여 이를 입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요즘은 하드디스크를 USB포트에 달아서 동영상을 볼 수도, 혹은 DLNA같은 것도 직접 지원해서 네트웍을 통해서 입력을 받을 수도 있다. TV(Television, 텔레비젼, 테레비는 일본말에서 온 변형)는 단순히 매체를 이야기하고, 공중파, 케이블(CATV), 셋탑박스, 위성방송, 등등 여러 경로로 컨텐트를 받아 소비할 수 있다. 단순히 매체이기에, 뿐만아니라 비디오, DVD, 블루레이, 다양한 게임기 혹은 컴퓨터와 연결할 수도 있다. 뭐가 어찌되었건, TV는 결국 “이미” 어디선가 오는 내용을 소비하는 장치다.

다음은 처리. 예를 들어 입력에 따라 업스케일/다운스케일, 보정, 채널전환, 입력소스 전환 혹은 근래에는 컴퓨터의 일부 기능으로 파일관리라던가 어색한 설정인터페이스등을 처리하는 등 입출력의 보조적인 처리기능들 위주였다. 인터페이스들은 하나같이 어색하고 뭔기능인지 모를 기능들과 원하는 기능을 찾기에도 직관적이 않은 등 TV스러웠다. 출력이자 소비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플라즈마, LCD, LED, DLP등의 좀 더 사실적인 재현 대비 가격에 촛점을 투고 변화해왔다. 이런 화살같이 한방향으로 발전한 논리적 구분을 기반으로한 특징들로 다시 “컴퓨터의 특징을 제외한” TV를 생각하면 TV 메타포라는 것이 사실은 간단한 원시적인 것이다.

첫째, 언제나 움직이고 소리가 나야하며 같은것이 계속 떠 있거나 반복되면 TV 느낌이 아니다. 사람들이 TV앞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방송, 즉 움직이는/계속 바뀌는 동영상이라는 본질때문일 것이다. TV를 켜면(호텔같은 곳의 PPV같은 것이 아닌이상) 메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든 랜덤한 상황이든 동영상을 기대한다. 입력을 지속적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바꿀때마다 움직이는 화면이 지속된다. 어떤 미디엄을 통해서 입력을 받던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TV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정적인” 메뉴방식에서 시작한다는 사실과는 배치되는 컨셉으로 사실은 유지해야되는 TV 메타포 중 한가지이다. 쉽게 생각하자: TV에서 TV가 안나오면 이상하다. 예를 들어, 메뉴가 나와도 채널들이 조그맣게 목록으로 보이는 것보다 뭔가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TV 컨텐트 위에 나와야 TV답다.

이를 확장하면, 페이지 기반의 브라우징은 TV 메타포를 거스르는 컨텐트라는 의미도 된다. 홈 스크린에 정적인 메뉴를 두는 것도 비슷하다. 언제나 영상이 메인이고, 다른 데이타/어도너/자막/정보는 모두 데코레이션의 느낌이다. 사진따위의 정적인 컨텐트를 보는 기능은 TV에서 그 기능 자체로써는 의미가 약하고, TV와는 그대로 융합하기 힘든 기능이다 – 뭔가 움직이는(인터페이스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계속 움직이는) 기획이 필요하다. 뭐든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여러사람이 본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채널을 바꿀때 채널 메뉴를 보고 있는 것보다는, 보고 있는 화면이 심심하지 않게 광고라도 나와서 움직여야 TV다. 꼭 전환이 에니메이션이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이것이 올바르다, 효율적이다, 좋은 인터페이스이다…라는 관점을 떠나서 사람들의 뇌에 그런 길이 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리모콘. 이것은 현재 불변의 인터페이스이다. TV를 대체하는데 입력장치가 리모콘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냥 그 방식을 유지하고 리모콘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요새는 아이폰과 연동하거나, 이상하게 생긴 키보드 같은 것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는 얼마나 될까, 아직은 리모콘과 비교가 안될 것이다. 미래에는 뭔가 다른 방식의 TV를 제어하는 HUI로 바뀔 것이라고 하지만, 얼마전의 딜버트 만화가 상징적으로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리모콘을 대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될 수 있다.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닌 TV 앞에서 팔을 휘두르는 것은 이상적인 인터페이스가 아닐 것이다.

다른 기기들도 제어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유니버셜 장치들도 사실 “리모콘” 메타포다. 불을 끄고 TV로 영화를 보다가 다시 불을 켜서 키보드로 뭔가를 적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기획일까. 키보드에 백릿 기능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왜 영화를 보는 경험(Experience)을 마치 영화관에서 전화를 환하게 켜서 주변사람들 불편하게 하듯이 해치나. 리모콘이 인터페이스이어야되는 상황이라면 검색은 무용지물이된다. TV에 기존의 웹브라우징 기능이 다시 한번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다. 도통 제대로 된 입력장치 혁신 없이 무슨 수로 주소를 입력해서 브라우징이나 검색을 하라는 것인가. 역시나 TV 메타포를 생각해서 만들어야되는, 그냥 좋은 기능이라고 갖다 붙여봐야 소용없는 것들이다. 인터페이스의 혁신 없이도 링크와 필터링, 제안(Suggestion)등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해서 만든 TV는 듣도 보도 못했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흐름에 맞으면 좀 더 자세히 적어보겠다).

셋째, Seamless한 경험이 중요하다. DTV이전의 TV에서 채널을 전환하면 군더더기 없이 해당 채널로 넘어간다. 채널들을 네비게이션할때도 위아래 버튼을 누를때마다 바로바로 바뀌어서 보여준다 – 아날로그 시절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마치 가스불을 키듯이 다이얼로 돌려서 채널을 전환하던 구형 TV들도 드르륵 소리내면서 전환되면서도 채널들이 바로바로 드르륵 소리에 맞춰서 전부 보일 정도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DTV로 처음 넘어왔을때 TV들을 기억한다. 채널을 전환하면 전환될때까지 인지할 수 있을만한 긴 딜레이가 있다. 이는 Seamless한 경험의 큰 방해요소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 시간은 대충 200ms쯤된다고 치면, 이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편리한 메뉴로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보고 싶은 것을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UX인데 엉뚱한 기술에 촛점을 두고 있다. 아래는 이번 안드로이드의 새 버젼인 Jelly Bean의 이 ms(millisecond)단위의 개선을 위한 Project Butter라는 코드명의 작업을 설명하는 영상이다:

ms(millisecond) 단위의 변화는 사용자들이 말로는 그 부분을 집어내기가 힘들지만, 인지를 통해서 그 효과 자체가 통계에 나타난다. 즉, “뭔가 다른 것 같은데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것들은 인터뷰같은 것을 통한 유저 스터디 같은 방식으로는 알아내기 힘들고, 오랫동안 안드로이드의 문제였었다. 이것도 마이크로 스케일의 일종의  Seamless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버튼을 5개 혹은 8단계의 메뉴를 거쳐야된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물리적인 버튼에 숫자가 쓰여있어서 누르면 해당 채널로 바뀌던 방법만큼 직관적이고 편한 인터페이스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복잡성/다양성으로 인해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재현이 쉽지 않지만, 그 메타포는 필요한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의 근원이라고 하는 Braun의 Dieter Rams의 유명한 10가지 디자인 법칙을 봐도 그것과 들어맞는다. 사용자에게 정보를 마구 들이대면, 그다지 예측할만한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예측이 안되면 그에 맞춰서 개선하는 것도 힘들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인터페이스인가.

제대로된 N스크린 전략도 Seamlessness가 중요한 요소이다. 문제는 기술적으로 잘 안된다는 것. TV에서 보던 것을 손안의 디바이스로 옮겨서 이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짜로 끝내주는 기능이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될 때를 가정하면 말이다. 전환하는데 기다리라는 에니메이션이 빙글빙글 돌면서 기다리게 되는 순간 벌써 사용자는 혀를 찬다. 디바이스에서 보던 것을 TV에서 볼 수 있는데 TV에서 보던 것을 디바이스로 못 옮겨오는 것도 이상하다. 옮겨왔다고 해도, 다시 보던 곳을 찾아서 FF를 해야한다면 그것도 골치다.

넷째, TV는 선택 뿐만 아니라 Serendipity Device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TV를 키는 경우도 있지만, TV를 보기 위해서 TV를 키는 경우도 많다. 눈앞의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면 보고, 아니면 채널브라우징을 한다. 혹은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자 켰어도 눈앞의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면 역시나 그것을 볼 수도 있다. 채널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랜덤한 것이다. 시작 시간이 10분 늦어졌는데 TV를 켰다. 역시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10분동안은 시청자에게는 늦어진 자체로는 안타까운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의 간접기회가 형성되고 광고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다. 역시나 이런 점이 “좋다/효율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험이고, 사람들이 익숙한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메뉴는 이 경험/메타포를 잘 제공하지 못한다.

Serendipity를 위해서 UX를 기획/디자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보이지만, 기존 TV 사용자에게는 분명 어필할 요소가 아닐까. TV의 Serendipity는 어쩌면 향수다. 지금 자라는 새로운 세대들은 아마도 감염되어있지 않기에, 시간이 지나 더이상 향수를 느낄 세대가 다수가 아닐때쯤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지도 모르는 그런 것. 하지만, 아직 그 세대들이 더이상 TV를 구매할 결정력이 없어지는 때가 오기에는 좀 멀다. 그 전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를 만족/대체할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바보상자인것을 알면서 보던 TV였는데, 효율성을 따지고 들 기기는 아니지 않을까. 꼭 그래야된다기보다도, 사용자가 그런 것에 익숙해져있고 이를 버릴만한 더 큰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한에는 대체하는 것이 더더욱 먼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몇가지 유지하면 어필할만한 TV 메타포를 들었다. TV는 일종의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제품 자체로 사람들이 스위치하게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이해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디지탈이라는 것은 사람을 돕기 위해서 나온 산물이고, 아날로그한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TV의 Disruption은 제품기획의 촛점을 사람에게 다시 바꾸는 것으로 일어나기 쉽지 않을까. 물론 구글처럼 GFTV(Google Fiber TV)같은 방식으로 TV를 끼워팔아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품 입장의 접근이라기 보다는 E2E 자체를 통째로 대체하는 관점이기에 다르다고 하겠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TV  자체의 문제들이 인터넷/컴퓨터와 융합하고 안방에 들어서기 위해서 해결되어야할 것들도 있다.

…계속.

Written by charlz

2012년 7월 28일 at 오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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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Google Fiber 더하기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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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그저그런 구글 TV에 대한 언급을 했었는데, 금방 새로운 소식이 뉴스로 나왔다. 바로 Google Fiber소식. (구글이 Dark Fiber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기에 놀랍지는 않다.)

이 소식은 케이블/ISP 회사들에게 있어서는 주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일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만 파는 것이 아니라 50불을 추가하면 Nexus 7에 2T스토리지박스에 TV 셋탑박스에 150개 정도의 채널에 Google Drive 1테라를 준다. (일부 프리미엄 채널은 역시나 추가비용이 드는데, 따로 뜨는 창에 보이지 않는 색으로 깨알같이 적어놨다.) 반대로 300불 설치비용만으로(역시나 마치 무료인것처럼 광고한다) 사용료 무료 인터넷을 제공한다. 캔자스시티에 살고 싶다 – 난 TV는 필요없고 캡없는 100배빠른 인터넷 ㅜ,.ㅜ;; 설치비를 무료로 해주고 이미 70불이면 파격이다. 사기꾼회사 컴캐스트에 나도 이미 60불넘게 매달 내고 있고.

지금은 GFTV(Google Fiber TV)를 위해서 70불에 추가로 50불을 더내야되는 구조이지만, 다른 인터넷/케이블 회사처럼 Subscription 판매 전문 업체(대리점)한테 2차적으로 넘기는 구조로 가게 되면 당연히 더 싸진다. 우리나라처럼 자전거 주고, 현금 돌려주고 해서 팔테니. 그렇다면 이건, 괜찮은 딜이된다. 물론 이 사업이 캔자스시티보다 더 크게 가게될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블로그를 보면 1/4의 시민들이 인터넷을 집에서 못쓰고 있다는 등 캔자스시티를 걱정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기려고 하지만, 공익만을 위한 사업이었다면 애초에 TV를 50불 추가요금으로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1/4이 주로 금전적인 이유로 가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무료 인터넷 설치비용은 300불이다. 뭔가 좀 이상하다. 결과적으로는 시에 도움을 주고, 윈윈이고자 한 프로젝트이겠으니 좋은 시도라는 생각은 하지만서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미 요즘 Google이 하는 사업에서 가격구조 따지는건 별 의미가 ㅇ벗겠지.

일단 홈페이지부터 가보자. 홈페이지의 배치를 보면 무엇을 내세웠는지, 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첫 화면에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인터넷보다도 TV. 서비스 가격이 얼마일까하고 가격 페이지에 가보면? 역시나 TV – 제일 비싼 옵션이니까. 스크롤해보면 첫번째 특징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120불의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TV. 좀더 스크롤해서 Nexus7 태블릿을 왜주는지 설명을 보면  4개 특징중 3개가 TV – Watch Anywhere, TV is meant to be social, A new kind of remote인데, 언제 Nexus7이 TV 사이드킥이 되어버린겨. 좀더 내려가서 스토리지박스도 물론 TV를 위한 디바이스 성격이다. 그냥 나만의 생각인가? 은근슬쩍 TV를 강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빠른속도의 서비스에 대해서도 파급효과나 클라우드 같은 것에 대해 할이야기가 많지만, 그 중에서 TV관점에만 촛점을 맞춰본다. 아무튼 인터넷 서비스와는 별도로 이 셋탑박스와 TV서비스(IPTV) 끼워팔기는 큰 의미가 있다. 루머로는 TV Box는 구글에서 인수한 SageTV의 기술이라고 하면서 TV서비스가 캔자스시티 이외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기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구글TV 제품은 아닌가보다. 아마도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전용기기로 만들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이 구글의 시도는 우리나라의 IPTV와는 목적과 태생이 상당히 다른 점에서 생각해볼만하다. 일단 간접적으로 구글의 사용자를 늘려서 광고를 팔고자 하는 목적은 입아프게 강조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겠고, 이외에 IPTV 사업자들이 인터넷을 팔아먹기 위한 것에 비하면 구글은 이런 구조를 바꿀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제품 퍼주기도 이런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존의 회사들은 깔고앉은 방식을 바꾸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글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점이 크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왜 굳이 – 이전 글에서처럼 골치아픈 일들이 많을 - TV 업계와 한바탕 하겠다는 것일까. 게다가, 이 인프라 구축 비용은 천문학적인 초기투자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왜 끼워팔기의 한 축인 전화는 손을 안댔을까 – 자기들은 구글 보이스도 있는데도?

TV는 일단 안방에 침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글 TV의 부족한 80%를 이 사업을 통해 안방에 들어갈 기회를 찾는 것이겠지. 게다가 시기적절하다. 구글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1) 독자적인 TV 소비 방식 유도. 이미 셋탑박스를 제공하지만, 여기에 올려진 OS와 앱은 지속적으로 자동 업그레이드된다(자동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다). 하드웨어 제품을 판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 것이기 때문에 소비방식을 제어/소비패턴을 분석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을 사용해야되는 끼워팔기이기 때문에 TV가 나오는 한 제품이 어떤가/채널이 얼마나 많냐하는 등 제품판매였을 경우의 질문은 덜 중요하다. 셋탑박스에 실제로 앱플랫폼을 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유투브나 넷플릭스가 된다고는 하니, 마켓의 가능성도 있다. TV 채널들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요소지만, Switch Bait(미끼)일 가능성도 있다.

(2) Google TV와의 시너지. 구글TV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Churn에 영향을 미친다. 구글TV의 소프트웨어와 GFTV의 소프트웨어가 같은 것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호환만 되면, GFTV의 서비스는 구글TV와 결합이 쉽다. 이 시너지는 구글TV의 판매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루머에 캔자스시티 이외에도 서비스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미 구글 TV 사용자는 잠재적으로 고객이 될 수도 있다.

(3) TV컨텐트의 모바일 유통. Nexus7을 내세운 것을 생각하면 이 부분의 가능성을 우선순위로 가져가고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요즘 N스크린이라고 부르면서 사실은 기껏해야 절반의 N스크린인 기술도 GFTV에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TV/스토리지/허브/태블릿/GFTV앱이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에서 보던 영화를 AirPlay로 애플TV로 넘길 수는 있지만, 애플TV에서 보던 영화를 아이패드로 넘기는 시나리오가 안되면 반쪽짜리일 것이다. GFTV는 된다는 것 같다.)

(4) 소셜 시도. 구글은 지금 실제 성공 여부와는 별도로 구글+쪽으로 큰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도가 이쪽과 결합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GFTV로 행아웃이 된다던가, TV컨텐트가 G+ 페이지를 갖는다거나, G+로 공유가 가능하다거나 등등.

TV 플랫폼을 위해서 취한 접근치고는 굉장히 대담하다. 쉽지 않은 TV 제품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는데에 큰 우위를 점하겠지만, 결국에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제대로된 수익모델을 만들어내느냐 – 그리고 Disruption으로 평가받을만큼 밀어붙일 수 있느냐 – 하는 큰 숙제가 있을 것이다. 위에도 적었듯이 요즘 구글은 직접적인 수익보다는 간접적인 모델을 생각하는 것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기존 ISP들은 안방을 점령하면서도 돈욕심에 혁신을 거부하고 그 어드밴티지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최소한 기존의 인터넷서비스 회사들(ISP)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경쟁이 생겼다. 어쩌면, 세르게이나 래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케이블회사와 한바탕하고 나서(흔한일) 그냥 우리가 해버리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 사람들의 케이블/인터넷서비스 회사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고, 그들도 이를 충분히 겪었을 것이기에 황당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기득권들의 횡포가 너무나도 심하다는 의미이고, 이런 문제를 바꾸기 위한 일환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면, 니들(나한테는 컴캐스트) 발등에 불, 쌤통일테니.^^ 안움직이던 공룡들이 방해하는데 주력하느냐, 아니면 경쟁을 통한 혁신에 주력하느냐는 앞으로의 관전포인트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되면 기사들을 통한 추측보다는 아래 발표 동영상을 먼저 보시길:

Written by charlz

2012년 7월 27일 at 오후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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